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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확실성과 그 증거 - 김준곤 목사님의 글입니다. /한국대학생선교회 대표

RangR 2020. 2. 29.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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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곤/한국대학생선교회 대표

 

일요일 아침 천하에 울려 퍼지는 교회의 종소리를 듣는다. 저것은 로마의 사형수인 나사렛 예수가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증거는 아무데도 없다.” 이 말은 니이체가 한 말이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확실성을 믿지 못하거나 부정하는 사람들이 교회사를 통해 끊이지 않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이 땅에서도 니이체처럼 허탄한 잠꼬대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 가슴 아프다.

예수의 부활은 태양 같은 증거들과 목숨을 건 허다한 증인들이 있는 너무나도 확실한 역사적 사건이다. 우리 신앙고백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그러므로 부활을 의심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믿음 없는 증거요 구원받지 못한 증거이다. 하나님의 계시를 상대화시켜 버리고 반대로 인간의 이성을 절대시하는 오늘의 일부 잘못된 신학의 경향 속에서 특히 하나님이 맡긴 양무리를 바로 가르쳐야 할 신성한 책임을 지고 있는 목회자들과 신학도들은 부활의 신앙을 분명히 확립하고 증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는 수많은 증거가 있으나 필자는 이것을 열두 가지 측면에서 하나하나 논증하고자 한다. 우리가 부활의 신앙을 갖지 못한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 된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의 논의와 결론은 부활의 확실성에 달려 있다.

 

1. 역사적 증거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사역 등 이 땅에서의 생애 자체까지도 그 역사성을 부정하려는 극단적인 이단자들이 있다. 그뿐 아니라 오늘날 일부 급진 신학자들은 예수의 죽음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서 유독 부활에 대해서는 부정하려고 든다. 즉 그리스도가 죽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그의 살아나심에 대해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태도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이요 반대로 인간 이성의 판단과 논리에 예속된 비극이다. 성경을 보면 그 당시 대제사장들과 장로 등 종교지도자들도 예수의 죽음에 대해서는 어떤 은폐나 조작을 하지 않았으나(물론 그들은 예수를 죽일 죄목을 찾기 위해서는 허위사실과 위증을 했다) 부활의 사실에 대해서는 철저히 조작을 하고 있음을 본다.(28:11-15)

 

여자들이 갈제 파수군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에게 고하니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군병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이처럼 당시 종교지도자들도 그리스도 부활의 역사적 사실을 왜곡 조작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것이다. 왜냐하면 부활의 사실을 은폐 조작하지 않으면 그들이 그리스도를 죽인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그들의 자기 모순을 스스로 반증하는 것이 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복음서의 증거들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부활의 역사성을 부인한다. 이 점에 대해 존 로빈슨(John Robinso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복음서를 살펴볼 때 빈 무덤에 대한 그들의 증언은 모두 일치한다. 실제로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세부 사항에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그것은 사건의 진실성을 해치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제자들에게 신앙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것이 확실하다. 그리스도의 부활이야말로 제자들의 신앙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인류의 역사는 ADBC 즉 그리스도 이전과 이후의 연호를 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사건이 역사의 분수령이고 원점이란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사건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이다. 'BC', 'AD'라고 하는 약자나 주일 교회 그리고 신약성경은 세계를 바꾸어 놓은 부활 사건의 증거로 오늘날까지 엄존되고 있다. 만약 부활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 당시 절대 권력이 그토록 사실을 은폐하려 했는데도 오히려 널리 전파될 수 있었겠는가? 또 어떻게 교회가 역사의 한 가운데 세워졌으며 주일(主日)이 지켜지게 되었으며 신약성경이 완성될 수 있었겠는가? 존 로빈슨은 따라서 최근의 학자들은 이 이야기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의 시도를 포기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우리 주위에서는 새삼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을 부인하려 드는 역현상이 일어나고 있어 유감스럽다

 

2. 성경의 증거가 있다.

책 중의 책이며 생명의 말씀인 성경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5:39)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는 다름 아닌 죽었다가 다시 사신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는 성경의 말씀대로 부활하셨다(고전15:3)

먼저 구약성경이 예시하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보자

욥기 1925절 이하에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했으며 이사야 2619절에는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이다.”라고 했다. 다니엘서 122절에는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라고 예언되어 있고 시편 1610절에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라고 말씀하신다

고린도전서 153절은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증거하고 있다. 여기서 성경 대로라 함은 구약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대한 예언(16:10, 11;53:10-12)이 이루어짐을 뜻한다. 특히 요한복음은 20장 가운데 무려 9장이나 일주일간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3. 예수 자신이 증언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의 핵심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3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가르치시니”(16:21) 하신 말씀을 위시하여 예수께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이미 제자들에게 친히 예언하신 것이다.(8:31; 9:22) 이처럼 4복음서에는 14번이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부활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 요한복음 1125절에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말씀은 기독교 신앙의 기초이자 핵심인 것이다.

또한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 엠마오 도상에서 두 제자에게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24:25,26)하시며 자신의 부활을 친히 증거 하셨으며 그후 예루살렘에 모인 무리들 가운데 나타나셔서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24:38, 39)고 하심으로 자신의 부활이 육체적으로도 분명한 것임을 증거 하셨다.

오늘날 혹자들이 그리스도의 육체 부활을 부정하고 있는 잘못된 주장은 일고의 가치가 없는 것으로서 그들의 과오는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에 논리적 근거를 두지 아니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분명한 것은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씀을 인간의 이성으로 대치시켜 버리면 신학은 성립될 수 없다. 신앙고백이 없는 신학은 신학이 아니다.

 

4. 예수께서 부활시킨 사건들의 증거가 있다.

예수께서는 나인 성 과부의 아들과(7:11-17), 가버나움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고(5:22-43), 베다니 마을의 사랑하는 나사로를 살리셨으니(11) 이로써 부활의 능력을 실증하신 것이다. 이처럼 예수의 부활의 예증이 되는 일들 부활의 그림자가 될 만한 사건들은 신구약 성경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구약성경에 보면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워졌으며 엘리야도 죽음을 통과하지 않고 승천했다. 또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린 사건(왕상 17)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린 기사가 있으며(왕하 4), 열왕기하 13장에 보면 한 무명인의 시체를 장사지내는 사람들이 이방 군대의 습격을 받고 겁에 질려 엘리사의 묘실로 도망을 가서 그 시체를 엘리사의 뼈에 닿게 했을 때 그 시체가 살아났다는 기록도 있다.

신약에는 예수의 제자로서 베드로가 욥바에서 다비다라는 여 제자를 살린 일이나(9) 바울이 그의 설교를 졸면서 듣다가 삼층에서 떨어져 죽은 유두고를 살린 예 등이 있다.(20:7-12) 이러한 죽은 자의 부활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그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우리가 어떤 핑계로도 이 엄연한 사실을 왜곡 할 수 없는 것이다.(1:20)

 

5. 제자들과 사도들의 증거가 있다.

부활의 빈 무덤을 목격한 여인들은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천사의 음성을 듣고 무서움과 큰 기쁨에 싸여 이 사실을 제자들에게 알리려 달려갔다.(28:7) 그리고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3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 한 사도와 모든 다른 이에게 고하니”(24:5-9)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 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24:33, 34) 이처럼 예수의 부활을 증거 하였다.

그리고 사도행전은 사도 될 자격을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이 될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1:22) 또한 사도행전의 기독교인은 부활의 도를 전하는 사람들로 통했다.(4:2) 이들은 오늘날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거짓말을 하지 못해서 순교한 사람들이다.

예수를 일시 배반했던 베드로도 부활의 신앙을 갖게 됨으로 담대해져서 온 무리들에게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2:14-42)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다”(2:14, 15) 이처럼 담대히 부활을 증거 하였다.

예수 믿는 자를 잡아죽이는 일에 가담했던 바울은 말하자면 기독교 박멸운동에 앞장선 사람이었으나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이후 변화 받아 부활예수의 증인이 되었다.(9:1-22) 바울이 디모데후서 2장에 쓰기를 거짓 교사들이 많이 나타나서 망령되고 헛된 말을 하는데 그런 것을 삼가라 진리에 관하여는 저희가 그릇 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고 했다. 이미 그 당시에도 부활에 대해 의심하게 만들고 이단 사설을 말하는 자들이 있어서 고린도전서 15장에서 힘주어 부활의 설교와 변증을 하고 있음을 본다. “너희 중에 부활이 없다하는 자들이 있는데 부활이 없이 어찌 그리스도가 살아나겠느냐 부활이 없다면 전도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고 우리는 모두 거짓 증인으로 발견될 것”(15:12-14) 이라고 변증했다. 평신도 스데반도 부활예수를 증거 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했다.(7) 이처럼 많은 제자들과 사도들의 증거는 끝이 없다.

 

6. 원수들의 증거가 있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에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국인 로마제국의 공권력과 유대종교 공권력이 개입되었다. 예수를 잡아죽인 일을 비롯해서 그들을 결정적으로 난처하게 만들고 골치 아프게 한 것이 바로 예수의 부활 사건이었다. 이것은 민심을 보통 어지럽게 하는 일이 아니어서 민심을 잠재우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의 시체를 군중들 앞에 공개하는 일인데 그들은 이 결정적 증거를 제시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당시 총독 빌라도에게 저 유혹하던 자가 살았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러므로 분부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적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유혹이 전보다 더 될까 하나이다.”(27:63, 64)하고 간청하여 파수꾼으로 굳게 지키게 하고 돌문에 인봉까지 했었다. 따라서 어떤 인간의 물리적 힘으로 2톤이나 되는 돌문이 옮기워졌거나 시체를 옮긴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을 뿐 아니라 설령 가능했다하더라도 파수꾼과 함께 현장에 있었던 그들이 모를 리가 없는 것이다. 결국 원수들은 예수의 부활을 부정할 만한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이러한 절대권력의 힘으로 현장을 굳게 지킴으로써 어떤 외부의 힘도 작용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는 역설적인 결과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어쩔 수 없이 군병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제자들이 예수의 시신을 도적질해 갔다고 위증하게 한 것은 자신들의 모순을 스스로 노정시킨 것이다.

 

7. 군중들의 증거가 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예수의 처형 사건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대의 이슈였다. 예수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군중들은 열광적으로 호산나를 연호 했으나 민심이 돌변하면서 오히려 예수를 처형하는 일에 혈안이 되었다. 그들은 예수가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신 메시야이기를 기대했으나 종교지도자들의 음모로 말미암아 일개 사형수로 골고다 언덕에서 처형되는 것을 보고 얼마나 허탈했겠는가? 만일 예수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어찌 그때 그 군중들이 후일에 제자들로부터 예수의 도를 듣고 회개하고 예수를 믿을 수 있었겠는가? 예수의 처형을 목격한 그 군중들이 불과 50일 후 같은 도시에서 너희가 죽인 예수가 살아났다.”는 증거를 들을 때 3천명 5천명씩 부활의 도를 믿게 되고 회개하고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2:14-42) 이는 세상의 어떤 권력의 힘에 의해서나 인위적으로 된 일이 아니다. 성령의 강한 역사 가운데 그들의 마음이 열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다시 사심이 없었다면 그의 죽으심도 헛된 것이다. 하물며 예수를 믿지 않던 무리들이 부활에 대한 확증이 없이 회개하고 그를 믿을 수는 없는 것이다. 부활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한 수 천명의 군중들이 바로 산 증거이다.

 

8. 심리학적인 증거가 있다.

고린도전서 15장에는 예수의 부활을 500명이 동시에 목도하고 그들 가운데 태반이나 살아 있다고 증거 했다.(15:5, 6) 또 많은 사람들이 40일 동안 예수를 따라다니며 기거를 함께 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불덩어리처럼 열광적으로 부활하신 예수를 증거 하다가 대부분 순교를 했다. 그 많은 증인들이 그렇게 열심으로 하나같이 오랫동안 예수의 부활을 전했으며 당시의 모든 종교 정치 사회지도자들과 많은 계층의 사람들이 이 부활의 도를 배척하고 그것을 전하는 사람들을 가두고 때리고 죽였던 것이다.

그런데 만일 부활 사건이 꾸며낸 이야기거나 불확실한 일이라면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버릴 수 있었겠는가? 심리학적으로 볼 때 거짓되고 무가치한 일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인간은 없다. 하물며 수많은 제자들이 동시에 금생과 내생에 아무 유익이 없는 거짓을 위해 박해와 순교를 당할 수는 도무지 없는 것이다. 인간이 집단으로 꾸며서 부활신앙을 만들어내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몽고메리는 예수의 추종자들이 심리학적으로 혹은 기질적으로 그러한 신격화 과정을 수행할 수 있었겠는가? 만일 그들이 그렇게 했다면 그들은 협잡꾼이거나 집단적인 정신병자들이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9. 사회학적인 증거가 있다.

유대종교의 상징은 할례와 안식일과 회당이라 할 수 있다. 예수의 제자들도 유대인이었지만 세례를 받았다. 세례는 예수의 죽음에 연합해서 물 속에 들어가고 부활에 연합해서 살아나는 것이다.(6:5) 십자가와 부활의 연합인 것이다. 성례는 부활을 증거 한다. 성찬은 죽은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 살아나신 예수의 제자로서 혼인잔치와 같이 기쁨을 나누는 것이다. 율법으로 말미암은 할례가 부활로 말미암아 세례가 된 것이다.(2:25-29;5:6, 15) 전통적인 유대인의 집회장소인 회당(synagogue)은 예배처로 그리고 자녀들의 교육기관과 재판소의 역할을 했다. 회당에서는 율법사들과 랍비들이 구약의 율법을 강론했으나 예수께서는 회당에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므로(4:23) 공생애의 시작과 함께 이미 회당을 복음중심의 교회개념으로 바꾸시기 시작했다. 당시 유대인들은 회당은 물론 성전에서까지 매매하는 일이 성행하여 예수께서는 장사꾼들을 내쫓고 성전을 청결케 하시면서 내 집 만민의 기도하는 집(11:17)이라 하셨다. 마침내 예수는 자신의 터 위에 교회를 세우셨으니(고전3:11) 피로 사신 것이요(20:28) 고난과 부활이란 역사적 사실 위에 세워진 것이다. 필립 샤프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부활 위에 서 있다. 이 사실 없이는 교회가 태어날 수도 없었고 설령 태어났다하더라도 곧 자연사하고 말았을 것이다.”라고 했다.

안식일(Sabbath)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장 중요한 의식 제도였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창조 사역을 마치시고 이레 째 되는 날에 안식하심에 그 유례를 두고 있다.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지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31:14)고 할만큼 절대로 폐할 수 없는 날이었다. 신약 시대에 와서는 예수께서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셨으며(2:28) 안식일 후 첫날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그 날을 부활 기념일로 지키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일요일을 주일(主日)로 지키게 된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한 것이다. 만일 부활의 역사적 사건이 없었다면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이 제정될 리가 없었다. 고린도전서 162절에 보면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매주 첫날(주일)에 그가 갈 터이니 연보를 미리 준비해 둘 것을 부탁했고 사도행전 207절에서는 매주 첫날에 떡을 떼기 위해(예배와 친교) 그리스도인들이 모였다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요한계시록 110절에서는 요한이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하였다고 기록함으로써 예수 부활이후 초대교회가 안식일 대신에 주일을 성수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 당시로부터 종교적 인습과 제도의 일대 변혁을 가져왔으며 그로 인해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부활 사건 없이 이런 엄청난 사회적 변화가 생길 수 없다.

 

10. 도덕적 증거가 있다.

예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인격적으로 도덕적으로 거듭나는 체험을 했고 세상을 변화시켰다. 이 변화는 역사적이고 실증적이며 구체적이다. 다메섹 도상의 사울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남으로 새사람이 되어 겸비한 바울이 되었다. 프랑스의 한 시인은 사랑하는 그의 딸이 선교사로 자신의 곁을 떠나게 되자 내 심장처럼 소중한 딸을 빼앗아 간 나사렛 예수 그는 죽은 사람인가? 산 사람인가? 그는 하나님인가? 인간인가? 생명의 약탈자여 사랑의 약탈자여하고 절규했다. 예수는 진정 부활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므로 지금도 우리의 인생관을 바꾸어 놓고 가치관 세계관 도덕관을 바꾸어 놓는다.

만일 죽은 예수를 산 것처럼 위장시켜 부활신앙을 만들어냈다면 기독교는 원천적으로 사기사건이고 미친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런 것이라면 기독교 복음은 2천년을 흘러 오늘에까지 온 인류를 변화시킬 수 있었겠는가? 미친 짓과 사기행각이 어떻게 최고 최대의 도덕적 신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는가?

 

11. 성령의 증거가 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8:9)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 죽을 몸도 살리신다(8:11) 곧 예수의 부활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의 역사이자 증거요 이는 곧 믿는 성도의 육적 부활의 보증이 된다.

그러나 누구든지 성령을 받지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라 시인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부활의 예수를 부정하거나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못한다.(고전12:3) 그러므로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다.(요일4:3) 오리라 한 말 그대로 적그리스도가 벌써 세상에 왔으니 이것이 말기 현상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자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성령과 미혹의 악령을 이것으로 알 수 있다 했다.(요일4:6) 요컨대 성령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능력이요(8:11) 부활하신 주를 증거 하신다(요일5:7). 초대교회 사도들도 성령의 큰 능력을 받아 예수의 부활을 증거 했으며 무리들이 은혜 받고 회개했다.(4:33) 이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승천하시기에 앞서 제자들에게 하신 성령의 약속이요 지상명령이었다.(1:8) 또한 이것은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셨다는 사도들의 신앙고백인 것이다.(15:8) 예수께서 고난받으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14:26)하셨다. 또한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16:13)하셨으니 우리는 오늘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부활의 예수를 믿고 증거 한다.

 

12. 믿는 성도의 내적 증거가 있다.

2천년 교회사를 통해서 성도들에게 죽음보다 강한 신앙고백이 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신 주님을 믿고 고백하며 증거 하는 것이다.(24:46;2:14-36) 또한 우리도 그와 함께 죽었다가 다시 산 것을 믿는다.(2:20;6:8) 이것은 부활신앙에 대한 성도의 내적 증거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다.”(요일5:10)고 단언한다. 반면에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들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한다.

이것을 성경은 또한 양심의 증거라고도 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보다 자신의 이성의 판단에 치우쳐 부활의 주를 부정할지라도 그 사람의 양심은 그러한 자신의 이성에 의한 모순된 판단과는 달리 자신을 고발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 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고후1:12)했다. 윌리암 컬벗슨(Willam Culbertson)모든 그리스도인 삶의 잠재 능력을 설명해 주는 데 원리가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모든 신자들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성도의 내적 증거는 영생과의 관련에서(1:27), 예수께서 이 사실을 말씀하심을 통하여(14:20-23), 성령의 알게 하심(요일3:24)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이다. “증거 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이다.”(요일5:7)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는가?”(고후13:5) 이처럼 성경이 밝히 말씀하시는 바 성도의 부활에 대한 내적 확신과 증거가 없다면 교회사를 통해 위대한 신앙의 선진들이 부활의 도를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버릴 수 없었을 것이며 이 시대 부활신앙의 증인된 우리들도 예외일 수 없는 것이다.

부활은 절대 절명의 사실이다. 예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다. 이 믿음을 가진 자도 그와 함께 죽고 살았다. 그러므로 벌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이 한편으로는 신자들의 미래의 부활을 보증하는 것이며 한편으로는 신자들의 현재적 삶 속에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새 생활의 근거가 된다고 했다. 디이슨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말씀은 예수의 부활이 신자들의 부활과 연관된 것임을 강조한다. 이것이 부활 신앙의 실존적 의미이다. 그러나 이와 함께 부활 신앙의 실존적 의미 가운데 중요한 것은 중생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부활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이다. 중생한 사람은 성령 안에서 성화 되어 나오고 자기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힘으로 사는 사람이다. 오늘날 일부 잘못된 부활 부정론도 그것이 신학적 관점이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이러한 잘못된 신앙의 문제라 할 것이다.

사도행전은 예수의 부활 이후에 이루어진 성령의 행전이다. 십자가 사건 부활 사건 이후에는 성령 사건, 전도 사건, 기도 사건, 순교 사건이 이루어졌다. 오늘 이 시간도 우리의 신앙고백과 헌신 속에서 사도의 행전은 기록된다고 볼 때 오늘날처럼 미혹케 하는 영과 인본주의적 풍조가 만연한 때일수록 우리는 온전한 부활의 신앙과 그 증거를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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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 J. Sparrow Simpson, The Resurrection and Modern Thought, 1911, London, p 230

2. Josh McDowell, 41More evidence that demands a verdict, 1981,(San Bernardino;Heres Life publishers, INC), p 372

3. Josh McDowell, op cit, p 337

4. Philli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Grand Rapids:Eerdmans Puhlishing Co,), Vol1, p 172

5. Louis Berkhof, Systematic Theology(Grand Rapids, Eerdmans Publishing Co,), 1974, p 346

6. Henry C Thiessen, Lectures in Systematic Theology(Grand Rapids:Eerdmans Publishing Co,), 1975, p 337

 

김준곤/한국대학생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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