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며, 예수님께로 누가복음 7:36-50 임광목사 꽃동산교회
[음악] 여러분들한테 좀 생소한 이름의 목사님 이야기로 오늘 말씀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 미국의 스티븐 퍼틱이라고 하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 참 영향력 있는 사역을 하는 목사로 유명한데요 이분이 어느 날 인터넷에서 저희가 존경하는 목사님이 인터뷰하는 그러한 대담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 그런데 갑자기 그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회자가 그 존경하는 목사님에게 이렇게 물어봤다고 합니다.
. 혹시 스티븐 퍼틱이라는 목사님 알고 계십니까? 이렇게 물어봤다는 거죠 목사님이 깜짝 놀랐죠 자기들이 이름이 나왔다는 것에 깜짝 놀랐고 두 번째는 자기가 존경하는 목사님이 자기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고 말합니다.
. 그리고 기대하면서 그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는 거죠 그런데 자신의 이름을 들었던 그 존경하는 목사님의 얼굴이 찡그러지기 시작하더라는 거예요 그리고 한숨을 푹 내쉬면서 단 한마디에 단어를 말했다고 합니다.
. 그 단어는 부자격자입니다.
. 부적격자입니다.
. 그는 목사 자격이 없습니다.
. 목사의 부적격한 사람입니다.
. 청중이 확 웃었다 그러는 거예요 공개적인 자리에서 부자격자라고 부적격자라는 말을 들었던 그 스티브 퍼팅 목사님은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누군가에게 비판을 듣는다는 것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는다는 것 누군가에게 지적을 받는다는 것만큼 가슴 아픈 것 없어요 말하는 사람은 쉽죠 비판하는 사람 참 쉽죠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정말 가슴 아프고 불행한 거예요 수험생들이 시험을 앞두고 얼마나 긴장을 많이 합니까? 취준생들이 인터뷰를 할 때 면접을 볼 때얼마나 또 긴장을 합니까? 제가 최근에 들었던 이야기인데요 정말 문제가 없어 보일듯한 유명한 연예인들 감독들 예술가들이 자기의 작품과 자기의 모든 것들이 발표되는 그 전날 밤에 밤잠을 설친다는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대중에게 평가를 받고 대중에게 심판을 받는다는 그런 마음 때문에 정말 힘들고 어려운 밤을 보낸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누군가에게 지적을 받고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는다는 거 비판받는다는 것만큼 괴로운 것 없습니다.
. 그런데요이 사실을 제가 다시 한번 묵상하면서 우리 예수님이 생각났어요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죠 예수님 당시에 정말 인기 스타 하셨어요 하지만 예수님을 좋아하는 사람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미워하고 대적하는 사람들도 너무나 많이 있었다는 거예요 가는 곳마다 nt들이 가는 곳마다 제적하는 사람들이 비판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많이 있었습니다.
. 제가 누가복음에서만 소개해 볼까요 누가복음 4장에서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이 자라나신 고향 나사렛에서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 회당에서 말씀을 전파하시죠 하지만 고향 사람들 유대인들은 그 예수님을 즐거워하지 않았어요 기뻐하지 않았어요 심지어는 예수님을 동네 밖으로 끌고 나가서 낭떠러지에 떨어뜨리려고 했다는 그런 일까지 있었습니다.
. 얼마나 괴로우셨을까요 예서 끝나지 않습니다.
. 누가복음 5장에서는 중풍병자를 고치셨다는 이유로 또 제자들이 금식과 기도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종교 지도자들에게 비판을 받습니다.
. 누가복음 6장에서는 제자들이 안식일 날 밀밭 사이로 걸어가면서 음식을 먹었다는 그런 것 때문에 공격을 받습니다.
. 그리고 안식일 날 손 마른 자를 치유하셨다는 것 때문에 또 공격을 받습니다.
.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대적자들이 있었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거죠 얼마나 괴로우셨을까요 그런데 그 비판과 예수님을 대적하는 그 중심이 있었던 사람들이 바로 우리가 너무나 잘하는 바리새인이라는 그런 계층이었습니다.
. 바리새인들 정말 믿음이 좋죠 정말 율법의 박학자식했던 사람들이고 그 율법을 따라 살려고 애썼던 깨끗하다고 자부했던 사람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 그 바리새인들에게 우리 예수님은 항상 비판과 공격의 대상이었습니다.
. 그런데 누가복음 7장에 이르러서 놀라운 쇼킹한 사건이 시작됩니다.
. 놀라운 사건이 시작됩니다.
. 그것은 뭐냐면 그런 바리새인 중에 한 명이었던 시몬이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했다는 거예요 함께 식사하자고 그렇게 날카롭고 비판만 하는 그 바리새인 중에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초청했다는게 참 놀라운 사건이에요 그런데 더 놀라운 사건이 있어요 그렇게 깨끗하다고 자부하는 바리새인의 집에 죄지은 한 여인이 들어갔다는 거예요 바리새인이 초청했다는 것도 쇼킹한 사건이요 그 바리새인 집에 죄를 지은 한 여인이 들어갔다는 것도 놀라운 사건입니다.
. 오늘 본문에 그 바리새인과 죄를 지은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 이 상반된 두 사람을 통해서 오늘 우리는 감사가 무엇인지를 배우기를 소원합니다.
. 그리고 감사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감사하지 않으면 어떤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는지 오늘 그 부분을 함께 나누면서 우리 모든 성도들이 감사함으로 예수님께 나아가는 복의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자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배우는 감사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정말로 느껴야 될 것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 여러분들에게 질문합니다.
. 감사하고 있습니다.
. 여러분들은 감사하고 있습니까? 정말 감사하고 계십니까? 혹시 여러분들 이상용 씨라고 아세요 옛날에 우정의 무대를 인도했던 건강한 사람 뽀빠이 이상용 씨 기원하시나요 저도 참 좋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 그런데이 뽀빠이 이상용 씨가 더 유명했던 것은 심장병 어린이들을 위해서 열심히 수고했다는 거예요 수술비가 없는 그 심장병 어린이들 죽을 수밖에 없는 그 심장병 어린이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수술을 시켜 주었죠 한 사람의 수술시키는데 드는 병이 1800만원을 자그만치 567명이나 고쳐주었다는 거예요 참 대단하죠 그것을 위해서 정말 70억 80억을 썼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뽀빠이 이상용 씨가 사라졌어요 왜 그랬을까 사람들이 고소했다는 거예요 그 후원금을 가지고 착복하고 그것을 횡령했다는 그런 누명이 씌워진 거죠 물론 수년 지나서 그것이 무고하다고 무혐의로 판명이 났죠 그런 그가 어느 날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그때 참 힘들었습니다.
. 저는 그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아이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열심히 수고했는데 그런 누명 때문에 존댓말 괴로웠습니다.
. 그런데 가장 교회로 어떤 것은 자기가 수고해서 치료해 주었던 567명의 아이들 중에 단 한 명도 내가 어려울 때 연락한 적이 연락한 아이가 없습니다.
. 제가 보답을 바라고 그 일을 한 것은 아니지만 한 명도 연락 안 하니까? 너무나 섭섭했습니다.
. 그 아이들이 샤워할 때마다 가슴에 있는 그 수술 자국이 보일 텐데도 한 명도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 그들만 그런 것일까요 아니요 우리 모두가 감사를 잃어버린 시대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 감사는 너무나 당연한 거예요 받은 것을 받았다고 고맙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인간이라면 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그것을 하지 않아요 그도 그럴 것이 디모데의 후서 3장 1절과 2절에 말씀 보면 말세에 나타난 증거들이 나오죠 그 중에 하나가 감사하지 않는다 말세일수록 마지막 때일수록 감사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여기서 끝나지 않죠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7장에서 열 명의 나환자를 치료해 주십니다.
. 깨끗하게 해 주시죠 누가 감사했죠 몇 명이 감사했죠 10명 중에 단 한 사람 10%만 감사한 거예요 경험한 것이 아니라 우리 예수님도 우리 모두도 감사가 당연하다고 말하지만 그 당연한 감사를 하지 않아요 감사가 어렵습니까? 감사가 힘들어요 괴로운 일입니까? 아니요 감사 쉬워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근데 그런 감사를 하지 않아요 그런데 오늘 본 말씀 누가복음 7장에서 감사가 쉽지 않은 상황 가운데 있는 사람이 감사하고 있어요 누굴까요 바로 죄지은 한 여인이에요 제 지은 한 여인이 예수님께 찾아가고 있어요 바리새인 집에 들어가고 있어요 이것이 쉬운 일이었을까요 아니요 목숨 걸만한 일이었습니다.
. 가장 깨끗하다고 자부하는 그 바리새인의 집에 죄를 지은 한 여인 어떤 학자는 창녀였을 거다라고 말합니다.
. 어떤 학자는 귀신들린 여자였을 거라고 말합니다.
. 어떤 학자는 현장에서 잡힌 간음한 여인이었을 거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어요 정말 끔찍한 죄인 동네에서 죄인이라고 낙인찍힌 더러운 여자였는데 그 여자가 지금 깨끗하다고 자부하는 바리새인 집에 들어가고 있어요 이것이 쉬운 일이었을까요 아니요 가면 큰일 당할 수도 있습니다.
. 추방당할 수도 있고요 퇴출당할 수도 있고요 어떤 맞을 수도 있습니다.
. 목숨을 걸고 들어가는 일이어야 됐죠 왜 그랬을까요 그 여인이 왜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갔을까요 두 가지 이유입니다.
. 첫 번째는 그곳에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 두 번째 그곳에 계신 예수님께 감사하기 위하여 목숨 걸고 들어가는 거예요 전 다시 한번이 말씀을 묵상하고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참 부끄러웠어요 참 부끄러웠어요 우리가 언제 예수님께 간절합니까? 우리가 언제 예수님을 목숨 걸고 쳤습니까? 아쉬울 때 병에 걸렸을 때 뭔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우리는 간절하게 목숨 걸고 주님께 기도하지 않습니까? 새벽 예배를 드립니다.
. 안 드리던 철야 예배도 합니다.
. 안 하던 금식기도까지 하면서 목숨 걸고 그 달라고 그거 해달라고 주님께 매달리고 또 매달립니다.
. 그런데 주님께서 정작 응답하시면 우리는 입을 싹 다 버립니다.
. 오늘 본문에 나오는이 여인처럼 목숨 걸고 감사하신 적 있으십니까? 감사하기 위해서 금식하신 적 있으세요 감사하기 위해서 새벽 예배 드리신 적 있으세요 적어도 저는 없더라고요 참 부끄러웠어요 뭔가 달라고 할 때는 목숨 걸고 기도하면서 감사하기 위해서는 목숨 걸지 않아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이 죄의 지은 여인은 오늘 예수님이 피로해서 예수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도와주시고 나의 피를 채워주신 그 예수님께 목숨 걸고 나아가고 있는 거예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이 죄 지은 여인만 목숨 걸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예배한 우리 모든 성도님들 저를 범하여 우리 모두가 목숨 걸고 감사하는 귀한 은혜가 우리 모두 가운데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자 그렇다면 오늘이 여인의 감사는 어떤 감사였을까요 세 가지로 함께 나눌 수 있어요 첫 번째이 여인의 감사는 감동이었습니다.
. 감동이었어요 왜 우리가 감사하지 않는 걸까요 왜 우리가 진짜 감사하지 않는 걸까요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당연하게 생각하니까? 감사하지 않는 거예요 당연하게 생각하니까? 감사하지 않는 거죠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는 아주머니 음식을 배달하는 아저씨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예요 돈 받으니까? 당연히 해야지 좋은 서비스 해 줘야지 오히려 불평하지 불평할 뿐이죠 감사하지 않아요 우리를 지켜주는 경찰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나를 지켜주는 군인들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심지어는 가족들마저도 당연하게 생각해요 아빠라면 엄마라면 자녀들이라면 그렇게 해야지 당연한 것 아니야 당연하게 생각하니까? 감사하지 않아요 진짜 당연할까요 제가 최근에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치과를 갑니다.
. 좀 치아가 아프거든요 치아가 아파 보니까?요 야구 경기 볼 때마다 참 부럽더라구요 그 풀이하고 선수들이 껌을 질겅질겅 씹는데 와정말 부러워요 저렇게 나도 씹고 싶어 보니까? 음식 씹나 감사한 일인지를 다시 깨닫게 되더라고요 저는 겨울만 되면 긴장합니다.
. 통풍이 찾아오거든요 통풍이 찾아오면요 걷기 너무 힘들어요 절뚝절뚝 거리면서 걸어다녀요 아 걷는게 진짜 축복이구나 달릴 수 있는게 진짜 축복이구나 당연한 것 아니에요 음식을 씹을 수 있고 소화할 수 있다는 것 걸을 수 있다는 걸 일어설 수 있다는 것 그거 당연한 것 아닙니다.
. 당연한 건 없으면 큰일나요 큰일 나요 근데 우리 당연한 것을 감사하지 않아요 감동하지 않기 때문이죠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죠 우리 가운데 감사할 것이 얼마나 많은데요 제가 중 고등학교 시절 때 읽었던 하나의 글을 그리 생각났어요 좀 길지만 오늘 여러분들한테 읽어드릴게요 우리가 감사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그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옷이 몸에 좀 낀다면 그것은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니 감사하고 정수하고 닦아야 할 유리창과 고쳐야 할 하수구가 있다면 그건 나에게 집이 있다는 것이니 감사하고 집을 해야 할 세금이 너무나 많다면 그건 나에게 직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 감사하고 주차장 맨 끝 먼 곳에 겨우 자리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내가 걸을 수 있는 데다가 자동차가 있다는 것이니 감사하고 난방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면 그것은 내가 따뜻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니 감사하고 세탁하고 다림질해야 할 옷이 산더미라면 그것은 나에게 입을 옷이 많다는 것이니 감사하고 온몸이 뻐근하고 피로하면 그것은 내가 열심히 일했다는 뜻이니 감사하고 이른 새벽 시끄러운 자명종소리에 깼다면 그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니 감사하고 이래저래 감사하다 감사하지 못할게 없다는 거예요 다 감사하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 찬송가 가운데 그런게 있잖아요 받은 복을 세어 봐라 카운트 이어 블레싱 없는 거 여러분들 생각하지 마시고요 없는 것 따지지 마시고요 우리 가운데 이미 주신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없으면 큰일 나는 것 그것 때문에 감격하고 감당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감사하는 거예요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 내가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내가들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내가 말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감사하신 분 계세요 적어도 저는 없어요 그런데요 볼 수 없고들을 수 없고 말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감사한 사람이 있습니다.
.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삼중고를 겪은 헬렌켈러죠 헬렌켈러가 이렇게 말합니다.
. 나는 나에게 장애 핸디캡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왜냐하면 그 핸디캡 장애 때문에 나 자신을 발견했고 내가 해야 될 일을 발견했고 무엇보다 마 이거 하나님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가 그것 때문에 감사할 수 있었다면 우리 가운데 감사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거예요 하나님 때문에 나에게 은혜 주신 하나님 때문에 우리는 감사할 수 있고 감동할 수 있다는 뜻이죠 근데 우리는 감사하지 못해요 오늘 죄를 지은 한 여인 오늘 예수님 앞에 어떻게 나아가고 있습니까? 눈물 흘리면서 나아가고 있어요 왜 그럴까요 세상 모두가 그녀를 손가락질했을 거예요 창녀가 지나간다고 귀신들린 여자 지나간다고 죄지은 여자 지나간다고 우리 집에 정말 우리 가운데 정말 끔찍한 여자 지나간다고 손가락질하고 멀리하고 어떤 사람은 도를 던졌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세상 모두가 손가락질에도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거든요 그녀를 용납해 주셨을 거예요 그녀에게 축복해 주셨을 거예요 그녀를 용서해 주셨을 거예요 그녀를 사랑해 주셨을 거예요 모두가 나를 버렸지만 나를 인정해 주시고 나를 받아 주신 거 예수님 그 사랑이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감동하고 감격하기 까닭에 그는 목숨 걸고 그 발이 생 집에 들어가 예수님께 눈물로 감사의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죠 다시 말씀드릴게요 절대 우리의 인생 가운데 당연한 것 없어요 우리 가운데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몰라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감동하며 감격하며 감사하는 귀환을 내가 우리 모든 성도들 가운데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두 번째이 여인의 감사는 드리움이었어요 주님 드리는 것이었어요 드리는 것 특별히 감사라는 단어를 영어로 땡스기빙이라고 말하거든요 땡스라고도 말하지만 땡스기빙이라고 말하거든요 러브 기빙이란 단어 없어요 조이 기빙이란 단어도 없어요 우리가 너무나 좋아하는 돈 머니 기빙이라는 단어도 없어요 하지만 땡스 감사라는 단어 뒤에는 기빙이란 단어가 붙어요 왜 그럴까요 감사는 드리는 거예요 감사는 주는 거예요 감사는 베푸는 거예요 오늘이 여인의 주님 앞에 그냥 나가지 않습니다.
. 어떻게 나아가죠 예수님의 발 앞에 바짝 엎드립니다.
. 예수님의 발 앞에 바짝 엎드린다는게 뭔지 아세요 그게 바로 예배예요 우리가 예배라고 말할 때 헬라어 단어로 프로스 퀸의 발에 키스하다 바짝 엎드리는 거예요 예수님의 발에 왔다 엎드려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거기서 끝나지 않죠 그 다음에 가장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붙습니다.
. 그냥 감사하는게 아니에요 말로도 감사할 수 있지만 최상의 것으로 최고의 것으로 주님께 드리면서 감사하고 있는 거죠 예감사는 드리는 겁니다.
. 또 시작됐구나 감사하니까? 또 드리라는 거구나 그렇게 생각하세요 어떤 말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하나님께서 뭐 이렇게 원하시냐고 하나님 째째하다고 하나님 정말 쩨쩨하실까요 전 여러분들한테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전부를 주신 하나님께 일부를 드리는 일부를 받으신 하나님이 찢지 않습니까? 전부를 받아 놓고 그 일부마저도 드리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는 우리 같이 합니까? 우리 주님은 우리 가운데 일부를 주신게 아니에요 오늘이 여인은 주님 앞에 향유를 붙고 있지만 그 주님은 무엇을 부으셨죠 물과 피를 십자가에서 완전히 부으셨어요 우리가 아무리 주님께 드린다 할지라도 주님께서 우리가 우리 주신 것에 발굽에 때 만큼도 우리는 채울 수가 없어요 전부를 주신 그 주님께 일부를 드리는 일부를 드리기를 두려워하는 우리가 쩨쩨한 것이 아닐까요 오늘 죄를 지은 한 여인은 그냥 말로만 감사할 수 없었어요 그냥 생색만 낼 수 없었어요 가장 값비싼 양육 가장 비싼 향유 가장 소중한 향유를 예수 앞에 부으면서 최고의 감사를 드리고 있는 거죠 제가 미국에서 신앙생활할 때 목회할 때 제가 너무나 사랑하는 집사님이 한번 계셨어요 이분은요 교회가 어려울 때마다 또 목회자들을 위해서 항상 헌금하시고 귀하게 베푸시는 분이셨어요 그런데요이 집사님께서 저한테 오셔서 헌금을 주실 때마다 꼭 하는 말씀이 있었어요 꼭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더 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더 섬기지 못해 죄송해요 저는이 집사님의 그 믿음과 그 헌신을 생각할 때마다 너무나 감동이 돼요 터트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더 섬기지 못해서 죄송해요 더 받지 못해서 섭섭하는 인생이 아니라 더 드리지 못해서 아쉬워하는 인생의 복된 인생이 아닐까요 예 우리 모두가 그냥 말로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전도를 주신 거 하나님께 최선으로 드리는 감사의 고백이 우리 모두가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이 여인의 감사는 감동이었어요이 여인의 감사는 드림이었어요 마지막 세 번째이 여인의 감사는 받음이었어요 받음이었어요 전 우리 주님이 참 좋아요 감사하고 드리는 영혼을 모른다 하지 않으세요 그 당연한 감사 전부를 주셨는데 그 일부를 주는 그 감사에 대해서 우리 주님께서 고마워하세요 그리고 세상이 줄 수 없는 더욱 큰 은혜를 부어주세요 이게 바로 놀라운 거죠 오늘 주의 지은 여인이 주님께 감사합니다.
. 그 주님께 그 주님께 감사하는 그 여인을 우리 주님께서 어떻게 하실까요 오늘 본문 48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제 끝나잖아요 50절 말씀 보니까? 내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노라 평안히 가라 세상이 평안 줄 수 없어요 세상이 구원해 줄 수 없어요 그 누구도 죄를 사하여 줄 수 없어요 그런데 감사는 그 여인에게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거죠 평안을 주노라 구원을 주노라 죄 사함을 주노라 더 큰 것으로 채워 주시는 너무나 좋으신 우리 주님 감사하니까? 그렇게 받을 수 있는 거죠 성도님들 우리 감사합시다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감사합시다 그냥 말로만 생생되는 것이 아니라 최선으로 주님께 감사합시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주시는 세상의 주소는 최고의 것들을 받아 누리는 귀한 감사의 은혜가 우리 모든 성도들 가운데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옆에 보다 고백해 보세요 이래도 감사 안 하겠어요 한번 고백해 보세요 하나 해보세요 이래도 감사 안 하시겠어요 감사합시다 선포하십시오 감사합시다 감사하는 귀한 은혜가 우리 모든 성도를 걷는 넘치기를 다시 한번 주님의 축복합니다.
. 두 번째 여러분들한테 질문할 것입니다.
. 감시하지 않습니까? 감사는 커녕 감시하지 않습니까? 음식을 먹을 때마다 두 종류의 방법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두 종류의 성향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포도를 먹는 거예요 그럼 포도를 먹을 때 어떤 사람은요 온전한 건 맛있는 것부터 먹는 사람이 있대요 어떤 사람은요 온전하지 않는 거 맛없는 것도 골라 먹는데요 참고로 저는 후자입니다.
. 맛없는 것도 골라 먹어요 맛있는 것을 남겨 놓는 거죠 여러분들은 어떻게 먹으세요 그리고 누가 더 행복할까요 전 참고로 맛없는 것도 먹는다고 말씀드렸어요 누가 행복한가 맛있는 것부터 먹는 사람이 행복하대요 왜요 맛있는 것부터 먹는 사람은요 항상 맛있는 것만 찾는데요 맛있는 거 그다음 맛있는 거 맛있는 거 근데 저 같은 인간은 어떻게 먹어요 맛없는 거 맛없는 거 맛없는 거 맛없는 것만 먹는다는 거예요 바꿔야겠어요 제가이 사실을 통해서 배운게 뭐냐면 긍정적인 사람은 항상 긍정이 꼬리를 물어요 좋은 것은 항상 좋은 것이 따라다녀요 반대로 부정적인 것은 부정을 낳게 돼요 나쁜 것은 항상 나쁜 것이 따라오게 돼요 다른 말로 표현하면 감성은 항상 감사가 따라오고요 불평하면 항상 불평만 해요 그 불평만 하는 인간들 주위 있잖아요 그런데요 참 재미있는 것은요 우리나라 말이 참 재밌어요 한자 말이 재미있어요 감사가 두 가지의 종류 있다는 거 아시죠 첫 번째 감사는 늦게 감자 보답할 사자 Thanks gratitude 감사란 뜻이 있고요 또 다른 감사는 살피의 감 조사할 사 자 인스펙션 감사원 조사하는 거예요 어디 타는 거예요 따지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어떤 감사를 하고 있습니까? 고마운 감사를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감시하는 감사를 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죄지은 한 여인은 지금 감사하고 있어요 감격하고 있어요 드리고 있어요 주기도 주신 선물을 받고 있어요 하지만 그 집의 주인이었던 바리새인은 감사하지 못해요 감사하고 있어요 뭔가 못마땅해요 불평이 가득해요 지금 자기 집에 죄 지은 여인이 들어왔다는 것만큼 그것 때문에 지금 기분이 나쁜 거예요 그러니까? 마땅히 해야 될 것도 하지 않아요 무엇을 하지 않았을까요 세 가지를 안 했어요 첫 번째 44절에서 예수님께서 오실 때 발 씻을 물조차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 손님이 오면요 지청소하고의 최선으로 다 맞이하는 거예요 그런데이 바리새인은 예수님께서 오신다고 했었을 때 예수님의 발씻음 물도 준비하지 않았어요 바리새는 분명히 알았을 거예요 율법의 통찰한 통찰한 사람이었거든요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이 천사를 맞이했었을 때 팔 수 있음을 대령했다는 것을 알았을 거예요 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발씻은 물조차 준비하지 않았어요 근데요 바윗이 쓰는 것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그 사실을 제가 너무나도 은혜를 받은 거예요 예수님의 발이 더러웠다는 거죠 예수님이 발이 냄새 났다는 거죠 그 더럽고 냄새나는 발에 여인은 입을 맞췄어요 머리털로 닦아 주셨어요 정말 귀한 거죠 바리새인이 하지 않는 거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안 해요 감사한 사람이 하죠 불평한 사람은 물 수 있을 물도 준비하지 않았어요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45절의 말씀 보면 그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환영하는 입맞춤도 하지 않았어요 유럽 사람들 사람 만나면 이렇게 양보리 키스하잖아요 쑥스러운 일인데 그거 잘하잖아요 그 당시에도 손님이 오면 그렇게 인사하는게 관례였대요 하지만이 바리새는 그것도 하지 않아요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46절에 예수님을 위해서 감람류를 머리에 붙지 않았다는 거예요 귀한 손님이 오면 감람유를 부었다는 건데 왜 감람류는 향유에 비하면 너무나 싼 기름이었다는 거죠 불평과 불만과 부정적으로 가득한이 바리새는 아무것도 하잖아요 물도 준비하지 않아요 입맞춤도 하지 않아요 감람유도 붙지 않아요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가장 끔찍한게 오늘 본문 39절입니다.
. 그 죄 많은 여인을 용납하는 예수님을 보고 저 인간은 선지자가 아니야 예수님마저도 판단해요 예수님마저도 비판해요 감사하지 않는 사람이 가장 가장 불행한게 뭔 줄 아세요 가장 끔찍한게 먼저 아세요 하나님마저도 판단해요 하나님 그러시면 안 되지 내가 이렇게 헌신했는데 내가 그렇게 순종했는데 하나님 그러시면 안 되죠 하나님의 판단하고 하나님을 비판해요 그런 그에게 무엇이 남을까요 오늘 여인은 죄사함을 받고 큰 은혜를 받았지만 바리새인은 예수님의 꾸준만 듣는 거예요 아니요 불평하는 것은요 불평이 다시 우리 가운데로 돌아옵니다.
. 꼭 기억하세요 비판하는 것이 꼭 우리 가운데 비판으로 돌아옵니다.
. 어떤 학자가 이런 말 하더라고요 우리의 뇌는 주어를 기억하지 못한데 주어를 판별하지 못한다이 서브젝트를 판단하지 못한대요 남을 향해서 욕을 했는데 그 욕이 남을 향한 것인지 나를 향한 것이 몰라서 나에게 하는 말로 듣는다는 거예요 남을 저주하면 그 저주가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이고 남을 욕하면 그 욕이 나에게 돌아오는 거예요 이게 누가 하신 말씀일까요 예수님께서 하셨죠 마태복음 7장 1절에서 3절 말씀 비판하지 말라 네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토론회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네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을 네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다 저는요 작정했어요 변하지 않기로 작정했어요 전 평가하지 않기를 작정했어요 비판하기 전에 감사하는 거죠 저주하기보다 축복하는 거죠 물론 비판도 필요해요 잘못된 것을 지적한 것도 필요하죠 말씀을 준비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 고린도후서 3장 9절입니다.
. 이렇게 나와 있어요 죄를 정죄하는 직분도 영광스럽지만 의의 직분은 더 영광스럽다 사람을 죄인으로 낙인 찍는 것도 영광스러운 직분이지만 사람을 세우고 높이는 것 이것이 더 영광스러운 직분이다라는 거예요 비판할 시간에 감사하세요 불평할 시간에 감사하세요 저주하고 평가할 시간에 축복하고 칭찬하세요 이것이 우리가 해야 될 일이 아닐까요 우리가 칭찬하면 우리가 감사하면 그 감사 우리 가게 돌아오는 거예요 비판하면 비판이 돌아오는 거예요 여러분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감시하지 마시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신 놀라운 은혜를 받는 귀한 은혜가 우리 모든 성도들 꺼내 넘치기를 주님의 우리를 축복합니다.
. 저는 설교를 시작하면서 생소한 이름의 목사님의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슬픈 퍼틱이라는 목사님 이분이 자기가 존경하는 목사님한테 공개적으로 언 컬리파이드 부적격자입니다.
. 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마음이 무너졌을까요 그런데 그 목사님은 그 책에서 이렇게 고백하더라고요 그나마 다행이었다 감사하게 됐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나는 그거보다 훨씬 더 엉망진창이기 때문에 죄인의 괴수이기 때문에 더 문제와 많고 더 하자가 많고 더 약점이 많은 사람인데 그만큼 말해준 것도 참 고맙다는 거예요 예 우리 모두는 죄인이에요 큰 죄를 지은 죄만 죄인이 아니에요 제가 자주 말씀드리죠 우리는요 죄를 어떻게 평가하냐면요 횟수와 크기로 평가해요 많이 죄를 지으면 큰 죄인이요 적게 죄를 지으면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요 우리 주님은 크기와 횟수로 우리의 죄를 평가하지 않으시고 잊고 없음으로 평가한다는 사실 오늘 바리새인은 내가 저 여인보다는 비교적 깨끗해 그렇게 말한다 할지라도 바리새인도 죄인이에요 그런데 제가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한번 읽고 또 읽으면서 은혜받은 것은 41절과 42절이에요 500 데나리온을 빚진 자도 50데나리온을 빚진 자도 우리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세요 둘 다 갚을 것이 없으므로 탕감해 줬다는 거예요 바리새인도 용서해줬다는 거예요 세상이 말하는 끔찍한 죄인도 용서해 주었다는 거예요 우리 모두는 용서를 받았다는 거죠 감사할 것이 없으십니까? 오늘도 괴로움 가운데 예배드리고 계십니까? 우리가 죄인이었는데 용서 받았다는 그 사실을 하나만으로 우리는 감사함으로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 우리는 수술을 받을 때마다 감사해야 될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이 심슨이라고 하는 의사입니다.
. 심슨이라는 의사 영국 의사죠 이분이 마취제를 발견했거든요 그 인생 말년에 어떤 기자가 그 심슨 박사님에게 찾아가서 물어봤다고 합니다.
. 박사님 박사님 인생 최고의 발명품은 무엇입니까? 당신 인생 최고로 잘한 것은 무엇입니까? 아마도이 기자는 마취제라는 대답을 원하면서 그 질문했을지 모르겠어요 그런데이 제임스 심슨이라고 하는이 박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 나의 최고로 발견한 것은 I was way seener 내가 대단한 죄인이란 사실을 발견한 것이요 또 하나는 죄인된 나를 우리 예수님께서 구원하셨다는 사실이요 감사할 것이 없으세요 오늘도 정말 힘들게 살아가고 계세요 예 하지만 우리는 감사할 수 있어요 누구 때문에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 때문에 나를 용서하신 예수님 때문에 나와 함께 하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당연히 충분히 감사할 수 있습니다.
. 이 감사의 은혜가 우리 모든 성도들의 삶 가운데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기도하겠습니다.
. 하나님 아버지 감사할 만한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가 충분히 감사할 수 있는 것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 때문입니다.
. 불평하고 감시하고 비판하는 인생이 아니라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복된 인생되는 우리 모두 될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꽃동산교회 설교 요약: 감사의 중요성과 예수님의 은혜에 대한 이야기
이 비디오는 꽃동산교회에서 열린 설교를 요약한 것입니다. 설교는 "감사하며 예수님께로"라는 주제로 진행되었으며, 설교자는 목사임광 동사입니다. 설교에서는 누가복음 15:3-7 성경 구절을 바탕으로 감사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설교자는 예수님을 존경하는 목사가 자신을 비판하고 부적격자라고 말했을 때의 어려움과 감동을 나누며, 우리가 감사함으로써 예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비판과 불평을 하지 않고 감사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설교자는 또한 감사는 받는 것이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감사함으로써 우리의 삶에 축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설교자는 우리가 죄인이지만 주님의 은혜를 받아 용서받았다는 사실에 감사함으로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기도합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목사님인 스티븐 퍼틱에 대한 소개

스티븐 퍼틱이 인터뷰를 받는 상황과 질문 내용

스티븐 퍼틱이 자신의 이름을 듣고 놀라는 상황과 그의 표정과 대답

비판을 받는 것과 감사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

예수님의 사역 중에 비판과 대적을 받는 상황들

누가복음 7장에서 등장하는 죄 지은 여인과 바리새인의 집

감사의 중요성과 일상 속에서 감사할 수 있는 사례들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핸디캡과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범한 여인을 용납하고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은 우리에게 끔찍한 여인을 용납하고 사랑하는 자세를 배워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선을 주시고 우리의 감사와 축복을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죄인이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용납해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를 받아야 하며, 감사와 축복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감사는 주는 것이 아닌 베푸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앞에 엎드려 감사와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감사는 주님께 드리는 최선의 예배입니다.

감사는 주어를 기억하고 주신 은혜에 대해 축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와 축복을 통해 주님의 은혜와 성도들 사이의 넘치기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비판하는 것보다 감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불평하고 비판하는 것보다 감사하고 축복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옳습니다.

긍정적인 사람은 항상 감사하고 부정적인 사람은 불평을 합니다. 우리는 긍정적인 태도로 감사하고 축복하는 것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비판하는 것보다 감사하는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비판은 우리에게 돌아오고 감사는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따라서 우리는 감사와 축복을 선택해야 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부정적인 사람은 불평을 합니다. 우리는 감사와 축복을 통해 부정적인 태도를 벗어나야 합니다.

감사는 주는 것이 아니라 베푸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최선으로 감사를 드려야 하며, 감사와 축복을 통해 주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감사는 주는 것이 아니라 베푸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판하는 것보다 감사와 축복을 선택해야 합니다. 감사와 축복은 우리에게 돌아오는 은혜를 가져옵니다.

감사는 주는 것이 아니라 베푸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최선으로 감사를 드려야 하며, 비판보다 감사와 축복을 선택해야 합니다.

감사는 주는 것이 아니라 베푸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최선으로 감사를 드려야 하며, 비판보다 감사와 축복을 선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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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비판하는 것보다 감사하는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감사와 축복을 통해 주님의 은혜와 성도들 사이의 넘치기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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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비판하는 것보다 감사하는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비판은 우리에게 돌아오고 감사는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따라서 우리는 감사와 축복을 선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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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은 꽃동산교회의 임광 동사목사님의 설교입니다. 목사님은 슬픈 퍼틱이라는 다른 목사님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번 설교에서 목사님은 어떤 사건을 통해 감사하며 예수님께 나아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예수님의 용서를 받았다는 감사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죄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횟수와 크기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주님의 용서에 대해 이야기하며, 주님은 크기와 횟수로 우리의 죄를 평가하지 않으시고 잊고 없음으로 용서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바리새인과 죄인에 대해 이야기하며, 바리새인도 죄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본문으로 누가복음 15:3-7을 가져와서 어떤 사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감사의 의미와 우리가 예수님께서 용서하셨다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감사의 축복을 기도하며 설교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