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참된 의의 누가복음 2장 8-14절 말씀
성탄의 참된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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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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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존중받을 사람이 많습니다. 애국지사, 독립 유공자들이 있는가 하면 조국 수호에 목숨을 바친 무명용사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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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는 연례행사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매년 성탄절이 돌아오면 상가나 백화점, 호텔이 먼저 화려하게 성탄 추리로 장식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탄과 관계없이 대목장을 보는 사람들이지요. 판문점을 한 번 다녀온 일이 있습니다. 출발할 때까지는 인민군이 도끼 휘두르던 기억이 있어서 마음 한 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서 보니 군인들의 표정도 밝고 안정된 모습이었습니다. 철조망도 높은 담벽도 아닌 한 건물 안에서 절반은 이북이요, 절반은 이남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누구를 위해 이 분계선이 필요하고 누구를 위해 젊은이들이 그렇게 피를 흘려야 했으며 또 누구에게서 그 보상을 받아야 할까요?
미국 LA 한인교회 박요한 목사의 북한 방문기를 보니 추수감사주일에 평양교회 예배에 참석하였는데 설교 내용은 열 문둥이 사건으로 지극히 복음적인 설교였다고 합니다. 얼어붙은 땅에도 봄은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천만 성도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입니다. 인신매매에 남창제도, 동성애 부부에 자살과 교통사고는 세계에서 1위가 되었습니다.
소돔 고모라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 알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역사가 없는 신앙은 의식으로 전락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렇게 죽어있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날이 성탄절입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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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크리스마스는 구원의 사건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역사적인 사건이면서 역사를 초월한 대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성탄은 임마누엘의 주님께 보배합을 열어 그 앞에 경배 드리는 것입니다.
몸통만으로 세상에 태어난 브이 치치를 통해 예수님을 만난 한 소녀가 브이 치치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숨은 길을 찾으라”
삼백 명쯤 되는 십대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감정과 믿음을 설명하는 도중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동안 헤쳐 온 난관들을 설명하다 문득 돌아보니 언제부터인가 학생과 교사들이 모두 울고 있었습니다. 어떤 여학생은 고개를 묻고 심하게 흐느끼기까지 했습니다.. 혹시 본의 아니게 그 친구의 끔찍한 기억과 상처를 건드린 건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그 여학생은 슬픔과 눈물을 삼켜가며 머뭇머뭇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놀랍고도 용감한 질문을 했습니다. 앞에 나가서 한 번 안아 봐도 괜찮겠느냐는 이야기였습니다. 너무도 뜻밖이어서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나오라고 했습니다. 여학생은 눈물을 훔치며 청중들 앞에 나섰습니다.
그리고는 내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나를 서슴없이 끌어안았습니다. 안고 또 안았습니다.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멋진 순간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강당에 있는 이들의 눈에 눈물이 가득했습니다. 소녀가 내 귀에 속삭였습니다.
“아무도 지금 이대로의 내 모습이 예쁘다고 얘기해 주지 않았어요. 사랑한다고 말해 준 이도 없었고요. 그런데 그 쪽이 내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어요. 이야기를 들으며 당신이 참 멋진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주님을 영접하십시오. 영원한 영광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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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구주 성탄은 만 인류의 영원한 복음입니다.
오래 전 어느 날 라디오에서 들려진 목소리입니다. “국민 여러분, 이것은 훈련이 아닙니다. 적기가 우리의 상공에 나타났습니다. 국민 여러분은 속히 방공호에 몸을 숨겨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방송이 수차례 반복되더니 얼마 지난 후에 “국민 여러분, 방금 귀순 용사가 미그 19기를 타고 00 비행장에 착륙하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전쟁의 경보를 유쾌하게 들을 자는 없을 줄 압니다. 오히려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소리이지요. 과연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 자들에게 어떤 소식이 기쁨을 줄 수 있을까요? 어느 날 폐암으로 죽어가는 환자를 문병 갔던 일이 있었습니다. 아내 되는 권사님이 평생을 기도하여도 여전히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죽음 앞에는 마음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기회를 놓칠세라 찾아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황당한 일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을 두지 않던 사람이 의사가 오니까 “선생님 나를 좀 살려 주십시오.” 하면서 매달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과연 의사가 죽을 사람을 살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영원히 죽어 마땅한 죄인을 살려주실 분이 오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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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탄의 표적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눅2:11-12).
구주 성탄은 신비 중에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고을에 탄생하신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를 목자들이 보았고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보았습니다.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이 표적과 증거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증거 곧 표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확실한 진리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 진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증거 있는 믿음이 얼마나 힘이 있는지 보십시오. 이 증거가 있었던 사도들은 어떠한 박해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하고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4:17-20).
이렇게 표적 있는 믿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표적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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