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삶의 복잡함과 길잡이의 필요성
사랑하는 장년부 성도 여러분,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우리는 오늘날 참으로 복잡하고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정보와 선택지 속에서 무엇이 바른 길인지 분별하기 어렵고, 예측할 수 없는 고난과 갈등 속에서 때로는 홀로 서 있는 듯한 외로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직장에서의 책임감, 가정에서의 역할, 자녀 양육의 어려움, 노년의 건강 문제 등, 어른이 된다는 것은 때론 감당해야 할 짐이 많아 보입니다. 우리는 이런 현실 속에서 참된 평안과 지혜, 그리고 우리를 이끌어줄 확실한 길잡이를 갈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바로 이 시대의 성도들이 붙들어야 할 가장 귀한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떠나기 전에, 그들이 홀로 남겨지지 않을 것임을 약속하시며, 한 분의 특별한 ‘돕는 분’을 보내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누구일까요?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본론 1: 세상이 알지 못하는 영원한 돕는 분, 보혜사 성령님
오늘 본문 16절과 17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한복음 14:16-17, 개역개정)
예수님은 자신을 대신하여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서 **‘보혜사’(헬라어: παράκλητος, 파라클레토스)**라는 단어는 참으로 풍성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돕는 자’라는 뜻을 넘어, 법정에서 우리를 변호하는 ‘변호사’(Advocate)가 되기도 하고, 힘든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위로자’(Comforter)가 되기도 하며,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는 ‘상담자’(Counselor)이자 ‘조언자’(Helper)가 되어 주십니다.
이 보혜사 성령님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 손으로 만져지는 것만을 믿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을 압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실 뿐 아니라, ‘우리 속에’ 거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영원토록 함께하시고, 우리를 돕고, 위로하고,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홀로 싸우는 존재가 아닙니다.
본론 2: 진리의 영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
성령님은 또한 **‘진리의 영’**이십니다 (요한복음 14:17). 오늘날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터넷에는 수많은 정보와 주장들이 넘쳐나죠.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진실인지 분별하기가 정말 어려운 시대입니다. 사회적으로도 다양한 가치관과 윤리적 문제들이 끊임없이 제기됩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미래의 윤리적 딜레마, 빠르게 변하는 사회 속에서 자녀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할지 등, 우리의 이성과 경험만으로는 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때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은 우리에게 참된 지혜와 분별력을 주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이심을 깨닫게 하시고, 세상의 거짓과 어둠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밝히 비추어 주십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 즉 **‘내 안에 거하시고’(헬라어: μένει ἐν ὑμῖν, 메네이 엔 휘민)**라는 표현은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영원하고 친밀한 내주(內住)를 의미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주장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이끄시고,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하십니다.
우리 안에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넘어, 삶으로 진리를 살아낼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복잡한 상황 속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모를 때, 성령님은 우리의 양심을 통해 속삭이시고, 말씀의 빛으로 길을 밝혀 주십니다.
본론 3: 성령님을 통해 누리는 참된 평안과 능력
예수님은 또다시 평안을 약속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 14:27)
세상이 주는 평안은 환경이 좋을 때만 주어지는 일시적인 평안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통해 주시는 예수님의 평안은 환경과 상관없이 우리 마음속 깊이 임하는 참된 평안입니다. 이 평안은 우리가 근심과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줍니다. 이 땅을 살아가면서 근심과 두려움이 찾아오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주시는 평안은 그 근심과 두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마음을 선물합니다.
또한 성령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말씀합니다. 이 능력은 우리가 복음을 증거하고, 사랑을 실천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갈 수 있도록 우리를 강하게 만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기억하고, 그것을 삶 속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요한복음 14:26). 연약한 우리가 때론 인내하기 어렵고, 용서하기 힘들고, 사랑하기 어려울 때, 성령님은 우리에게 힘을 주셔서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결론: 성령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삶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6월의 첫 주일,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 곧 영원한 돕는 분이신 성령님에 대해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늘 함께하시며, 진리 안에서 우리를 인도하고, 참된 평안과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제 우리는 이 놀라운 약속을 어떻게 우리의 삶에 적용해야 할까요?
첫째, 성령님의 임재를 인정하고 환영하십시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성령님이 늘 우리와 함께하심을 기억하고 인정하십시오. 크고 작은 모든 결정 앞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십시오.
둘째, 성령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십시오. 성령님은 말씀과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성령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셋째, 성령님의 능력으로 담대하게 살아가십시오. 우리의 연약함과 한계를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증거하며, 사랑을 실천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담대하게 살아내십시오.
여러분의 삶 속에서 성령님을 온전히 의지함으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기쁨을 누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요한복음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영원한 돕는 분,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늘 저희 안에 거하시며, 혼탁한 세상 속에서 참된 진리를 분별하게 하시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모든 근심과 두려움 속에서도 성령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게 하시고, 저희의 연약함을 넘어 주님의 강하심을 드러내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화 감동 교통하심이, 오늘 영원한 돕는 분 보혜사 성령님을 깨닫고, 그분을 온전히 의지하여 참된 평안과 능력 가운데 살아가기로 결단하는 사랑하는 모든 장년부 성도들의 가정과 직장, 사업과 자녀들, 그리고 섬기는 모든 사역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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